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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찬화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김중천 2017-05-12 추천 1 댓글 0 조회 1622

박찬화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어제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누구에게나 존경하고 본 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인데, 내겐 박찬화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에 한 참이나 허공을 바라보며 멍한 채 있었다. 요즘은 자주 죽음 너머 있는 영원한 도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바라보자고 설교를 하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박 목사님의 소천 소식에 잠시 본향을 잊어버리고 허무함에 빠졌었다. 더구나 목사님을 찾아 뵌 지 너무 오래돼서 죄송한 마음에 안타까움까지 더했다. 교회를 개척해서 바쁘다는 이유로 한두 해 미루더니 벌써 7년이 지나가버렸다. 빈소까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여서 더 죄송했고, 조만간 찾아봬야지 하면서도 게으름으로 인해 실기(失期)했다는 생각에 더 속상했다.

 

        십여 년 전 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나는 성결교회로 넘어오기 위해 사랑의교회에 지원했다. 박 목사님은 40대 초반의 나이 많은 전도사를 받아주셨고 사역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 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전도사님이 전도를 남달리 하시니 내 마음이 끌렸습니다.”

부천에서 사역하던 나는 낯설고 물선 양구로 추운 겨울날 이사를 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우리 가족이 적응할 수 있도록 목사님은 배려해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목사님은 굉장히 과묵하신 분이셨는데, 우리가 서먹해 할까봐 많은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봄이 되자 목사님은 매주 화요일마다 아침 9시에 어김없이 심방을 가셨다. 그날은 네 가정을 심방했는데, 보통 문제가 있는 두 가정과 장기 결석자 두 가정이 심방대상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목사님께서 심방할 가정을 정하셨고, 어느 정도 교회 사정이 파악된 뒤로는 내가 심방할 곳을 정했다. 봄에는 농번기라서 심방을 가는 곳마다 성도들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목사님은 장기 결석자에겐 몇 번이고, 몇 주간이고 만날 때까지 가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개사육장을 운영하는 성도를 찾아가셨던 일이다. 개사육장은 소나 돼지 축사와 달리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5분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냄새가 고약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성도를 만날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셨다.

        가끔 심방이 너무 일찍 끝나면, 목사님이 과거에 전도를 하다가 중단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셨다.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방문에 대부분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들이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정중하게 복음을 전하셨다. 복음을 전할 때면 목사님은 매우 적절한 말씀으로 이끌어가셨다. 상대방의 세련되면서 날카로운 질문에도 한 번도 머뭇거리거나 부적절한 답변을 하신 적이 없었다. 상황에 알맞은 대답과 함께 복음을 제시하시는 목사님은 언제나 낮은 톤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야말로 정중한 신사이셨다.

        때로는 목사님이 전도대상자 연락처를 내게 주시면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주문하셨다. 그 때 나는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나도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목사님처럼 이렇게 세련되면서 고상하게 전도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목사님이 영혼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통해 나는 왜 전도해야 하는지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세워갈 수 있었다.

        목사님과 함께 사역한 시간은 불과 1년 반 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그분을 영적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박 목사님을 사랑이 적은 사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분은 자상하셨고, 속 깊은 사랑을 하실 줄 아는 분이셨다. 언젠가 심방을 가면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세요.”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 의미를 여쭈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가운데 성도들과의 관계설정이 너무 힘드셨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가까이 했더니 편애한다고 하고, 멀리 했더니 사랑이 없다고 하더군요라고 회한 섞인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때 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렇게 엄격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랬다. 목사님은 늘 엄격하셨다. 성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랬지 싶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 늘 외로워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당연히 웃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분에게서는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목회자들이 지녀야할 권위라고 생각한다. 키도 작고 풍채도 없으신 분이 위엄이 있으셨다. 그 분이 바로 내가 아는 박찬화 목사님이시다.

        어느 책을 보니 필리핀 세부에는 라프라프 추장의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그는 그 유명한 마젤란(포르투갈의 탐험가, 개척자)이 함대를 이끌고 막탄 섬을 침공했을 때 목숨을 걸고 저항해서 그곳을 지켜낸 영웅이다. 사실 마젤란은 세계적 영웅이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그는 그저 한낱 침략자요 원수일 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세상 사람은 누구든지 상대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어서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착한 사람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어떻게 내려질까?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느냐?” 이 두 가지 기준이 그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리스도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평가를 받을까? 나는 그 길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고 편들어주고 배려해주고 칭찬해주고 높여주고 세워주면 될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영혼을 살리는 것 아닐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 주님처럼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

 

        내가 아는 박찬화 목사님은 진정 한 영혼을 사랑할 줄 아셨다.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방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또 찾아간 분이시다.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나를 보내셨다. 물론 내가 당신보다 복음을 더 잘 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면 혹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에서다. 누가 그분을 사랑이 없다고 하는지...

        박찬화 목사님은 늘 이렇게 기도하셨다. “황무지가 변하여 장미꽃 피는 곳이 되게 해주십시오.” 과연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가 기도하던 그곳에 지금 장미꽃이 피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내 귓전에 박찬화 목사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전도사님이 전도를 남달리 하시니 내 마음이 끌렸습니다.” 아마 이 말은 그분의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표현된 것 같다. 그래서 그분의 이 말씀이 앞으로 오래도록 내 삶에도 귀한 동력이 될 것이다.

      

        목사님 가시는 길에 시 한 편 들려드리고 싶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박찬화 목사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주께서 맡겨주신 일 하다가 그날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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