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참여마당 >
  • 자유게시판
교회 개혁론
신재원 2017-05-11 추천 4 댓글 0 조회 1294

백종국 교수의 3가지 `교회개혁론` (요약)  

 

 

● 한국 교계의 교회개혁의 방법 논의는 공통된 전제가 있다. 

 

1. 모두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있다 

2. 한국교회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들 사이의 논쟁은 개혁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 

 

 

 

●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왜곡된 견해들 : 

 

1. 가장 왜곡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많이 제시되는 방법이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자"는 주장 

 

가장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견해의 진심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어떤 교회에 대해 세습을 중지하라고 말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이 개혁연대의 주장에 반대하는 행위를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개혁적 목소리를 반대하는 주장의 논거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제시한다면 이는 자기 모순적이다. 만일 이런 식의 섭리에 의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개혁적 비판에 대해서도 잠잠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하여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심판자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된다. 

 

2. 다음으로 많이 제시되는 "목사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신다"는 주장

 

 

성경은 어디에서도 목사들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린다고 하지 않는다. 교회의 전통으로 성경을 대체하는 구교의 사제들이라면 모르거니와, 오직 성경만을 의존하는 신교의 목사들이라면 결코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한 거룩한 계층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처벌하기도 하시고 간접 처벌하시기도 한다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나 개인이나 단체나 심지어 자연조차도 들어 쓰신다. 

 

3. "우리 교회 일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주장도 유사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우리는 보편적 교회에 속해 있으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교회가 범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잘못에 대해 깊이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그의 종된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죄악들에 대해 무관심해한다면 그 결과의 책임을 당사자들과 함께 묻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니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물론 교회 일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현상에 대해 개입할 수 있다. 군사독재나 부정선거나 세금탈루나 침략전쟁 등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벗어난 모든 현상들을 교정하는 행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개입하여야 한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은 때로 돌들이 소리치게도 하신다. 

 

● 유효한 논쟁 (1) 네거티브는 곤란하다? 

 

지금까지 제시된 교회개혁의 방법 논쟁 중에서 가장 유효한 논쟁거리는 다음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네거티브한 방법만을 쓰면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확실히 곤란한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대안이 없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개혁자라면 진시황을 비판하고도 목숨을 건졌던 채묵의 고사를 배우는 게 좋다. 대안을 비판과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다. 

 

개혁의 방법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통합할수록 좋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자가 종종 사용하는 '사고 많은 교차로의 비유'를 생각해 보자. 여기에 사고가 잦은 교차로가 있다.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어떤 개혁자가 있어서 이를 시정하려면 우선 이 교차로가 위험 교차로임을 알리거나 이 교차로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실어가기 위해 앰뷸런스를 대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교차로의 신호 체계를 고치거나 표지판을 바꿔 달거나 차선을 새로 그리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운전자들로 하여금 교통신호를 지키고 음주운전하지 않도록 장기적인 캠페인을 하는 게 필요하다. 이 대책들을 정리하면 긴급구난·제도개혁·의식개혁의 3대 개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모든 개혁자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 방법을 반드시 동시에 다 사용하라고 주장한다면 매우 곤란하다. 누구는 긴급구난에 더 관심이 있고, 누구는 의식개혁에 더 관심이 있다. 제도개혁은 전문적 지식이 없다면 접근하기가 곤란한 과제이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은 눈앞에서 당장 죽어 가는 교회들의 참상을 보고 격분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므로 긴급구난 행위에 몰두하는 게 좋다. 교회개혁의 역사와 이론에 익숙하고 경험이 많은 지도층들은 제도개혁과 의식개혁의 과제들을 제시함으로써 교회개혁의 흐름을 성숙하게 가꾸어 나가는 게 좋다. 교회의 지도층들이 할 일을 못하고 있거나 젊은이의 열정이 식으면 이 균형이 깨어진다. 

 

만일 현재 국면에서 소위 네거티브한 방법이 대세라는 판단이 든다면 이는 아마도 교회개혁의 포지티브한 측면을 주도하여야 할 교회 지도층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개혁에 있어서 네거티브한 방법만 쓰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으나 아직 한참 배워야 할 젊은이들에게 포지티브한 방법의 제시까지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 유효한 논쟁(2) 네 자신부터 개혁하라? 

 

다음으로 유효한 논쟁거리는 "네 자신부터 개혁하라"는 명제이다. 이는 항상 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을 개혁해야 하며 이 일이 멈추는 순간에 부패하기 시작한다. 한국교회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개혁의 대명제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국교회의 게토화'라고 지칭한 현상을 살펴보자.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구별됨을 뜻하는 '한국교회의 게토화'란 현상은 역사적으로 보아 세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고 본다. 

 

첫째는 전파의 초기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교회의 구별됨은 사회를 이끄는 향도 역할을 하였다. 

둘째는 사회적 주류로의 편입 단계이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사회의 주류 세력과 일치하였고 급속히 세속화되었다. 

셋째는 퇴폐적 게토화 단계이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 한국사회가 급속히 민주화되고 합리화하는데 반하여 도리어 한국교회는 더욱 권위주의화하고 비합리적인 행태를 증가시키고 있었다. 이 단계에서 한국교회의 구별됨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수치와 낙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 일반의 운명에서 보는 바처럼, 교회개혁을 외치는 세력들도 항상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곧 부패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는 민중을 위한다던 자들이 민중을 배반하고, 경제정의를 부르짖던 자들이 경제정의를 짓밟곤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자들도 매 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 개혁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언급할 사실은 완벽한 그리스도인이어야만 개혁을 부르짖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개인적 행실에서도 최대한 본 받을 만한 자들이 개혁에 동참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마치 극히 부도덕한 설교자의 입에서도 놀라운 지혜의 말씀이 나올 수 있듯이, 개인의 성품과는 별개로 개혁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성공을 위한 선정주의에의 유혹도 개혁자들이 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여기에서 선정주의란 동일한 사안을 두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실과는 다소 다르게 과장하고픈 유혹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개혁자는 항상 홀로 서는 자이다. 대중이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개혁운동으로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고 아이디어가 모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루터와 칼빈이 될 수도 있으나 쯔빙글리와 후스가 될 수도 있다. 후자의 운명을 피하고 전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적 욕망이 선정주의에의 유혹을 부채질할 수 있다. 때와 장소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두는 게 좋다.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안목으로 보면 지금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후자의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성의 확보도 개혁자들이 극히 주의해야 할 요소이다. 하나님은 공정한 분이기 때문에 모든 불공정은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되어 있다. 이는 특히 그 사실 유무를 판단하기 힘든 목사의 간음 혐의를 다룰 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어떤 목사가 여자 문제가 있는 목사로 낙인찍히는 것은 극히 간단하다. 사실 유무와는 관련 없이, 상당한 시차를 두고 한 번 혐의를 씌우고, 두 번 혐의를 일으키고, 세 번 혐의를 제기하면 그는 꼼짝없이 여자 문제가 있는 목사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는 마치 '교회개혁실천연대'와 '뉴스앤조이의 게시판에 들어와 특정인물에 대해 집요하게 악담하는 자가 기대하는 효과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개혁의 목소리를 낼 때에는 최대한 절차적 공정성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국교회는 신속히 개혁되어야 한다. 

 

한국의 교회를 사로잡고 있는 교단들은 젊은 여성도들을 유혹하여 간음한 목사 

새벽기도에 온 권사를 성폭행한 목사 

수 억 원의 헌금을 횡령한 목사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목사 

온 교인들이 떨어져 나가도 자신은 결코 나갈 수 없다고 공언하는 목사는 기필코 감싸주지만,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주장을 하는 목사들, 예컨대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건드리는 목사들은 신속히 그리고 가차없이 잘라내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눈앞에 두고 무익한 논쟁을 일삼는 행동은 피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만이 옳다는 독선은 피하는 게 좋다. 이미 지적하였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매우 넓고 포괄적이다. 그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자라면 불필요한 논쟁으로 도리어 본질을 훼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는 세습반대 데모를 하면 제도개혁을 말하고, 제도개혁을 강조하면 의식개혁을 주장하고, 의식개혁을 추진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보자고 말함으로써 개혁의 초점을 흐리려는 사악한 자들도 적지 않다. 

 

실로 교회개혁의 길은 험난하고 고독하다. 비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비판을 받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이미 안락한 길을 포기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힘과 용기를 잃지 않고 언제나 바른 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함께 기도하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백종국 교수 / 경상대 국제정치경제학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故 박찬화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김중천 2017.05.12 1 1622
다음글 2017년 예산편성표 내용좀 올려주세요 [1] 신재원 2017.04.18 8 1033

200050 강원 춘천시 죽림동 86-7 TEL : 033-256-7774 지도보기

Copyright © (기성) 강원서지방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2
  • Total234,147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