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목회 45년’ 성옥희 목사 은퇴 | ||||||
| 화천 광염교회 개척 후 뚝심목회 외길 … 교회건축, 개척, 목회자 배출 등 결실도 풍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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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옥희 목사(광염교회 명예·사진)는 1968년 강원도 화천군 신풍리에 광염교회를 개척한 후 무려 45년 동안 산골 성도들만 바라보며 한 교회만 섬겨왔다(본지 47호, 1993년 2월 25일자). 남성 목회자에게도 쉽지 않은 반평생의 산골 목회여정을 마친 그녀는 지난 11월 18일 명예목사로 추대됐다. 어릴 적, 군인교회였던 사북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성결교회 출신 군목들에게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됐다. 결혼하면 목회자가 못되는 줄 알고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도시나 다른 데서도 목회할 기회가 있었지만 성 목사는 산골에서 시작해 산골에서 사역을 마쳤다. 성 목사는 “다른 곳에서 청빙이 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다른 데는 네가 아니더라도 갈 사람이 있다. 넌 화천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응답을 받아 이후 줄곧 여기서 목회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골목회는 외롭고 가난했다. 강원도 최전방에는 작은 마을 외에는 군부대 밖에 없었다. 처음엔 사례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끼니가 없으면 금식하고 땔감이 없으면 철야하라는 뜻으로 알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주민들의 핍박도 심했다. 성 목사는 “아이들이 교회 와서 은혜 받고 우니까 동네사람들이 미치는 교회라고 예배를 방해하고 예배시간에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모진 세월 속에도 산골목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의 순수함 때문이었다. 45년 동안 얼굴 붉힐 일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성도들은 성 목사를 따랐다. 가족처럼 지냈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궁핍함도 채워 주었다. 은퇴할 때까지 교회학교 사역을 했던 그녀에게 아이들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모두가 자식 같았기 때문이다. 멘토 역할을 해준 덕분에 목회자와 군 장성도 많이 배출됐다. 지난 목회를 돌아보니 성 목사에게는 사람을 키운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성 목사는 목회적 사명에 충실했다. 그녀는 목회하는 동안 성전을 두 번이나 건축했다. 처음에 흑벽돌로 16평 교회당을 건축했다. 첫 성전입당 후 예배실에 200여명이 모여 은혜 받고 해맑게 웃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시절이었다. 이후 100평 규모로 2차 성전을 건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성 목사는 화천의 또 다른 지역에 평강교회도 개척해 10년 동안 두 교회를 동시에 목회하기도 했다. 차가 없는 성 목사는 주일이면 1시간 거리를 걸어서 예배를 인도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성도들을 위해 주일새벽부터 양 교회를 오가며 주일학교 예배, 주일낮예배, 저녁예배 등 하루 일곱 차례 강단에 올랐다. 평강교회는 이런 성 목사의 헌신 덕분에 교회당도 건축하고 온전한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은퇴 후 성 목사는 산골을 떠나지 않고 또 다른 사역을 펼칠 계획이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과 함께 살겠다는 소박한 꿈도 꾸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독거 노인들을 모시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쉬고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네요. 한편, 성옥희 목사는 지난 11월 18일 명예목사로 추대됐으며 성 목사의 오빠 성기형 장로도 명예장로로 함께 추대됐다. 후임에는 김성원 목사가 취임했다. 김성원 목사는 서울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인천 양문교회 개척자, 춘천삼교회 담임목사 등으로 사역했다. | ||||||

windvo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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