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수련회를 다녀온지 벌써 한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참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강원서지방내 교회와 목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춘천중앙교회 유동선 목사님, 지방회장 한근호 목사님, 김선일 목사님,
목양회장 조무진 목사님, 강성용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숙소와 식사로 섬겨주신 전주지방 바울교회 원팔연 목사님,
태평교회 김재곤 목사님,
정읍교회 전병일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저의 친구 정환진 권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강원서지방 춘천권 사모회 임원진의 헌신적인 수고와 모든 사모님들께 감사드리면서
부족하나마 감사한 마음으로 기행문을 올립니다.
‘사모수련회를 다녀와서
남춘천교회 하혜숙사모
2년 전 가을 어느 날, ‘우리 목사님이 재직 중일 때 사모님들을 모시고 내 고향 정읍 내장산을 한번 가봐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으나 강원도에서 전라북도까지 당일에 다녀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모회 재정도 어렵고, 무슨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기도하는 중 전주지방의 큰 교회 목사님들께 청원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개 일 년이 지난 11월초 전주 바울교회 원팔연목사님 댁으로 전화를 하였다.
“사모님 우리 강원서지방 사모회에서 내장산으로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저희가 당일에 다녀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선교사 게스트하우스에서 잠 좀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밥도 주세요.”
사모님의 우호적인 대답에 용기를 얻어 곧바로 정읍교회로 전화를 했다. 전병일 목사님은 같은 교회 학생회 출신 선후배여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승락을 받은 후 기도하며 한 해가 지난 2016년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강원서지방 사모들은 11월7일~8일로 수련회를 결정하고, 전주 한옥마을과 정읍 내장산, 논산의 병촌과 소성 두암 순교지를 순례지로 정했다. 그리고 이동을 우해 차량을 놓고 기도하던 중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사모님, 목양회장 조무진목사입니다. 사모님들이 차량문제로 걱정하고 계신다기에 제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호와 이레이신 주님의 은혜를 실감하며 우리는 드디어 스타렉스 2대로 설레임을 가득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소양교회 김선일 목사님께서 지원해주신 차를 타고, 이화교회 조무진 목사님과 산솔교회 강성용 목사님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우리 14명은 집결장소인 KBS 앞에 모여 출발했다.
예정시간에 병촌순교지에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고 병촌교회 윤영수 목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면류관 모양으로 건축된 병촌교회의 아담한 모습, 공원처럼 잘 단장된 교회의 드넓은 뜰과 정원은 우리의 마음을 한결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1950년 6월25일, 북괴의 남침으로 3개월 동안 양민들에게 행해진 온갖 박해로 남자27명 여자 39명 총 66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순교지라는 설명에 우리는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왜 66명이 순교하셨을까? 후손들에게 성경 말씀처럼 살아가라는 유언을 남기려하신 것일까?’ 유골과 유품을 안장해 놓은 기념탑 옆에는 수령 600해의 고목이 그 날의 부르짖음을 들려주듯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순교하신 성도님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지만 날이 추운 탓에 친구 정환진 권사가 한정식으로 유명한 ‘수라온’에 예약을 해주어 우리들은 예의 고장 전주, 음식문화로도 으뜸인 전주의 한정식을 맛보게 되었다. 그릇을 비울 때마다 새로운 반찬이 계속 나와 모두들 맛있게 먹고 있을 때, 태평교회 김재곤 목사님께서 해설을 잘 해주셔서 한옥 마을과 전동성당의 역사에 대해 알게되었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한옥마을로 이동하여 경기전을 돌아보았다. 가이드를 자청하신 김재곤 목사님은 빨간 셔츠와 청바지, 눌러쓰신 모자는 딱 어울리는 팻션으로 우리를 안내하시고, 태평교회에서의 만남을 약속하셨다.
오후 6시, 전주 바울교회에 도착했다. 우리의 피로를 짐작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땀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호남에서 제일 큰 교회라는 바울교회에 들어선 우리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사모님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온갖 음식들이 예쁘게 잘 차려져 있었고, ‘전주 음식은 알아줘야 한다’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쁘게 잘 차려진 식탁을 보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특히 민물새우 시래기찜과 민들레겉절이, 갈치조림은 강원도 사모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선교사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 6층 로비와 방안에는 형형색색으로 장식된 과일 바구니와, 예쁜 과일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쉬다가 2층커피숍으로 내려가 다음 날의 일정을 의논하고 있을 때, 어느 분이 오셔서 조용히 찻값을 지불하고 가셨다.
다음 날, 김재곤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태평교회에 도착하여 성도님들이 정성들여 준비하신 아침식사를 했다. 소고기미역국은 내 생일에 어머님이 끓여주신 미역국처럼 맛있고, 조기구이는 전라도의 특유의 맛을 담았다.
식사를 마치고 김목사님을 따라 교육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래전 내가 태평교회에 근무할 당시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새벽 3시 반이면 목사님의 발자국소리가 자명종이 되어 잠을 깨워 주곤 했었다. 당시 김재곤 목사님의 선친인 김용칠 목사님 부부가 새벽기도회에 나오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워낙 체격이 크셔서 그런지 발자국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녀들에게 통장하나 물려주지 않으시고 오로지 목양일념으로 평생을 청빈하게 사셨던 생전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오신 김재곤목사님은 ‘기왕에 왔으니 김제 금산 ㄱ자 교회를 꼭 돌아보자’고 하시어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에 도착하여 담임목사님의 해설을 듣게 되었다.
내용인즉 한낱 일꾼이었던 마부 이자익이 주인보다 먼저 장로가 되고, 주인 조덕삼은 나중에 장로가 되는데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을 뒷바라지 한 유명한 일화 “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은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라고 한 겸손하신 태도는 한국교회에 충격을 주는 족적을 남겼다는 설명이었으며
조덕삼 장로가 내놓은 터 위에 ㄱ자 교회를 세웠다고 하셨다. 신앙의 선조들에게 감사드리며 우리가 가야 할 두암 순교지로 향했다.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기독교 유적지이며 우리 교단의 순교지인 정읍시 소성면에 소재한 두암순교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탐방을 미리 알고 계신 홍용휘 목사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전쟁 때 윤임례 집사 등 23명이 공산당에 의해 순교한 곳인데 우리 성결교단의 거장이신 고 김용은 목사님의 어머니이신 윤임례 집사님이 순교하신 10월19일, 공산당이 몰려와 칼로 죽이고 가족들을 모아놓은 집에 불을 질러 4가정 23명의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셨다고 했다.
윤임례 집사님은 순교하시면서도 “나는 죽어서 천당가는데 당신들도 예수 믿기 바라오” 하면서 목에 칼을 맞아 순교하셨다고 했다. 몇 몇 사모님들의 눈가에는 어느새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십자가를 진채 대지를 딛고 굳게 일어선 신앙의 거인 23명을 상징하는 23단의 돌을 쌓아 올려 세워진 십가가 탑 꼭대기에는 신앙의 햇불이 활활 타오르는 형상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홍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지름길로 단숨에 최종 목적지인 내장산에 도착하였다. 내장산 입구의 넓은 평지에는 아름다운 애기단풍들로 장관을 이루었고, 우리들은 단풍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립공원 내장산은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아름다운 내 고향애 대하여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꼈다. 내장산 입구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을 옮겨 걷기도 쉽지 않았다. 내장산을 가면 꼭 봐야 할 금선폭포와 서래봉을 갈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정읍교회에 도착하니 내장산 단풍처럼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다. 드넓은 대지위에 우뚝 솟은 예배당과 잘 조성된 나무들이 가을바람을 배경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전날에 큰 행사를 치르셨다는 전병일 목사님께서 피곤하실텐데도 우릴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다.
“어서 오세요. 약속시간을 잘 지키셨네요”
1층 소예배실에서 간단한 환영의 말씀과 기도가 있은 후, 교우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안내해 주셨다. 조반을 일찍 먹었고, 내장산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서인지 다소 시장했던 우리들은 국물이 여유롭게 간이 잘 베인 등갈비찜을 먹었다. 전라도 음식은 어디를 가나 진가를 드러냈다. 맛있는 점심 후, 우리 일행은 30년 전통의 ‘모두랑 한방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 한방 쌍화차는 나의 막내 동생이 사모들을 위해 대접해 주는 고급 차로 마치 오래 달인 보약을 먹듯이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마셨다. 한방차를 끝으로 우리일행은 우리의 보금자리를 향해 귀가를 서둘렀다. 시계는 벌써 오후 3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춘천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틀간 있었던 많은 일들에 감회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병촌 순교지와 두암 순교지를 순례했던 일이 큰 보람으로 남았다.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제4회 강원서지방 춘천권 사모수련회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칭찬하며, 감사하며, 사모님들께서 더 많이 참석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과 함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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